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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필즈상 수상자는 누구?2018 필즈상 수상자는 누구?

별별 필즈상 이야기 2014 서울세계수학자대회 이전까지 필즈상을 수상한 수학자들은 모두
56명이다. 모두 세계가 주목한 젊은 천재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필즈상을 수상하기까지 거쳐온 과정은 각자 다양하다. 필즈상 수상자들에게는 어떤 뒷이야기가 있을까? 개성이 넘치다 못해 특이하기까지 한 별별 필즈상 수상자들에 대해 알아보자!별별 필즈상 이야기 2014 서울세계수학자대회 이전까지 필즈상을 수상한 수학자들은 모두
56명이다. 모두 세계가 주목한 젊은 천재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필즈상을 수상하기까지 거쳐온 과정은 각자 다양하다. 필즈상 수상자들에게는 어떤 뒷이야기가 있을까? 개성이 넘치다 못해 특이하기까지 한 별별 필즈상 수상자들에 대해 알아보자!
천재

최연소 기록을 세운천재 중의 천재는?

필즈상 수상자 중에서 가장 지능지수가 높은 사람은 누구일까? 모든 수상자들의 지능지수가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가장 지능지수가 높은 사람을 꼽으라면 호주 수학자 테렌스 타오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006년 세계수학자대회에서 필즈상을 수상한 테렌스 타오는 지능지수가 무려 225~230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테렌스 타오는 세계수학올림피아드 최연소 출전과 최연소 입상 기록도 가지고 있다. 1975년생인 타오는 11살 때 처음으로 세계수학올림피아드 대회에 출전해서 최연소로 동메달을 받았다. 그때부터 3회 연속으로 올림피아드에 참가한 타오는 12살 때는 은메달을, 13살 때는 금메달을 최연소로 수상했다.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테렌스 타오도 갖지 못한 최연소 기록을 가진 필즈상 수상자가 두 명 있다. 첫 번째는 최연소 필즈상 수상 기록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 수학자 장-피에르 세르다. 1954년에 필즈상을 수상한 세르는 당시 나이가 27살에 불과했다. 박사학위를 받은 지 3년 만에 필즈상을 수상한 것이다.

또 다른 최연소 기록 보유자는 1978년에 29살의 나이로 필즈상을 받은 미국 수학자 찰스 페퍼만이다. 페퍼만은 12살의 나이에 대학에 입학해 15살에 자신의 첫 논문을 독일어로 출판했다. 그리고 20살의 나이에 박사학위를 받은 뒤, 22살에는 미국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로 대학교 정교수가 되는 기록을 세웠다.

천재 - 테렌스 타오
노력

낙제와 낙방을 극복한 인간승리주인공은?

타고난 재능을 뛰어넘는 노력으로 필즈상을 거머쥔 수상자들도 있다. 대표적인 사람은 미국 수학자 스티븐 스메일과 일본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다.

1966년에 필즈상을 수상한 스메일은 대학생 시절 수학 전공 과목에서 B나 C와 같은 신통치 않은 성적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어렵사리 대학원에 진학한 뒤에도 시험에서 낙제점을 받으며 퇴학 직전의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이때까지 그 누구도 스티븐 스메일이 수학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길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이런 스메일이 보기 좋게 세상의 예측을 뒤엎은 것은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4년도 더 지난 뒤의 일이다. 당시 내로라하는 천재 수학자들이 매달렸던 난제인 ‘푸앵카레 추측’을 5차원 이상에서 완벽히 해결하는 논문을 발표한 것이다. 스메일은 이 논문으로 인해 단숨에 수학계의 슈퍼스타가 되었고, 필즈상을 수상했다.

1970년에 필즈상을 받은 일본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도 스티븐 스메일과 비슷한 경우다. 헤이스케는 가난한 장사꾼 집안에서 태어나, 우리나라의 중학교에 해당하는 유년학교 입시에서 떨어지기도 했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가난 때문에 대학 입학 시험 1주일 전까지 밭에서 거름통을 메고 일손을 도와야 했던 헤이스케는 대학교 입시에서도 재수를 하고 교토대에 입학한다.

그러던 헤이스케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교토대를 방문한 하버드대 수학과 오스카 자리스키 교수를 만나면서부터다. 자신의 관심사를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헤이스케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본 자리스키 교수가 헤이스케를 하버드대 대학원으로 초청한 것이다. 기회를 놓치지 않은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재능을 뛰어넘는 노력으로 수학 연구에 몰두했고, 결국 ‘특이점 해소’에 대한 연구로 필즈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는다.

노력 - 히로나카 헤이스케
괴짜

필즈상? 저는 안 받을래요!

1966년 소련의 수도인 모스크바에서 열릴 세계수학자대회에서 필즈상을 받을 수상자를 선발하던 심사위원들은 잠시 동안 고민에 빠졌다. 수상자로 뽑힌 알렉산더 그로텐디크의 국적을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로텐디크는 국적이 없는 무국적자였다.

1928년 독일에서 태어난 그로텐디크는 나치 독일의 지배 아래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큰 고통을 받았다. 아버지는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고, 어머니와 그로텐디크도 유대인 수용소에 수용됐다. 그가 수용소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은 두려움을 쫓기 위해 이런저런 생각에 골똘히 집중하는 것이었다.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그로텐디크는 프랑스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수학자가 됐다.

하지만 잊을 수 없는 어린시절의 기억 때문에 그로텐디크는 수학자가 된 뒤에도 전쟁과 국제 정치에 큰 관심을 갖고 행동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 미군이 폭격하고 있는 하노이 근처의 숲속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의미로 수학 세미나를 열었던 일이 대표적이다.

결국 그로텐디크는 소련의 동유럽 침공에 반대하는 뜻으로 자신이 필즈상을 받게 될 모스크바 세계수학자대회 참석마저 거절한다. 그리고 1988년에는 수학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뒤, 모든 지인들과 연락을 끊고 시골로 들어가 지금까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그런데 지난 2006년 그로텐디크 이후 또다시 필즈상 수상을 거부한 수학자가 나타났다. 바로 러시아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이다. 페렐만은 100년 동안 풀리지 않은 난제인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한 수학자로, 2006년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에서 필즈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하지만 그는 “문제를 풀었으면 됐지 상은 필요 없다”는 말을 남기고 시상식 참석을 거절했다. 푸앵카레 추측은 영국 클레이연구소가 제시한 100만 달러의 상금이 걸려 있는 문제이기도 했다. 페렐만은 상금도 거부한 채 지금은 수학을 그만 두고 어머니와 함께 집 근처에서 버섯을 채취하며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괴짜 - 알렉산더 그로텐디크, 그리고리 페레만
비운

필즈상 받고 싶은데 갈 수없어요~!

러시아 수학자 세르게이 노비코프와 그리고리 마르굴리스가 보기에는 자발적으로 필즈상을 거절한 수학자들이 ‘배부른 사람들’일 수도 있다. 두 사람은 정부의 반대로 필즈상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르게이 노비코프와 그리고리 마르굴리스는 각각 1970년과 1978년에 필즈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당시는 러시아가 강력한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 미국을 비롯한 서유럽 나라들과 정치, 군사적인 대치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마르굴리스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몇몇 러시아 수학자들로부터 차별을 받고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은 출국을 금지당해서 세계수학자대회에 참석할 수 없었다.

필즈상의 나이 제한 때문에 눈물을 삼켜야 했던 수학자도 있다. 바로 영국 수학자 앤드루 와일스다. 앤드루 와일스는 지난 1994년 300년 동안 풀리지 않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수학 난제인 ‘페르마의 정리’를 풀어낸 수학자다. 1993년 무려 6년 동안이나 두문불출하며 가까스로 문제를 푼 논문을 발표한 앤드루 와일스는 이듬해 열리는 세계수학자대회에서 필즈상 수상을 기대할 만했다. 그때 그의 나이가 정확히 만 40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의 증명에 오류가 발견된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마음이 급해진 앤드루 와일스는 자신의 수제자인 리처드 테일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1년 동안 매달린 끝에 오류를 수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정을 끝냈을 때는 이미 앤드루 와일스가 필즈상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세계수학자대회가 지나간 뒤였다. 결국 완성된 논문은 앤드루 와일스가 41세 되던 이듬해 출판됐다.

평생의 꿈인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한 것에 만족하며 아쉬움을 달래던 앤드루 와일스는 1998년 뜻밖의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 국제수학연맹에서 그를 위해 특별 공로상과 기념 은판을 제작해 주기로 한 것이다.

비운 - 앤드루 와일스
의리

한국사랑하는 의리파 수상자는?

아쉽게도 아직까지 필즈상을 받은 우리나라 수학자는 없다. 하지만 56명의 필즈상 수상자 중에는 우리나라와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 중에서도 1994년에 필즈상을 수상한 미국 수학자 에핌 젤마노프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나라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의리파’ 수학자다. 젤마노프 교수는 수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그 특별한 인연에 대해 소개했다.

젤마노프 교수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들이 많이 유학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한국 수학자들의 실력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 연구하는 많은 필즈상 수상자들이 한국 수학자들과 우정을 맺고 있다. 2010년 인도에서 필즈상을 수상한 수학자 엘론 린덴스트라우스는 여성으로는 최초로 미국 예일대 수학과 종신교수가 된 오희 교수, 고등과학원의 김정한 교수와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필즈상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비운의 수학자 그리고리 마르굴리스는 미국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뒤 오희 교수를 지도했다.

한편 러시아 출신 필즈상 수상자 막심 콘체비치의 아버지인 레프 콘체비치는 러시아 최고의 한국어 권위자다. 막심 콘체비치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인 언어인지 들으면서 자랐다고 한다. 레프 콘체비치는 러시아어로 한국어를 표기하는 표기법인 ‘콘체비치 체계’를 개발한 공로로 2012년에 한국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

비운 - 에핌 젤마노프,막심 콘체비치, 테렌스 타오